도피 이야기



 숲의 공기는 시리고도 맑았다. 하늘은 높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모두가 잠든 밤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들면 어느 곳에나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러한 별들을 하나 둘 헤아리고 있으면 머리를 휘젓고 있는 많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내가 제쳐두었던 또 다른 일들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간간히 저 멀리서 새벽 예불의 목탁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고, 산 아래쪽 등불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고요하던 숲은 아스라이 소리를 냈고, 그렇게 풀밭에 누워 뭔가를 생각했다가 안했다가 하는 동안 어둠은 밀려가고 저 멀리에서부터 여명이 찾아왔다. 구름은 떠오르는 아침 해로 물들며 하늘을 수놓았고, 밤 동안 들이켰던 찬 공기를 내쉬며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아침과 만났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보는가.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본다. 그리고 별을 보지 아니한다. 과거를. 현재를. 그리고 미래. 앞으로 다가올 끔찍하리만큼 길고 긴 나의 시간을. 그것은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어느새 나의 곁으로 다가와 숨을 죽이며 허리를 감싸고 있다. 달콤하기도 하고 소름이 돋는 그 손길에 취해 나는 많은 것들을 버려왔다. 그리고 얻었다. 그렇지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누군가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과는 달리 나는 언제나 나의 주변으로부터 도망을 친다. 나의 일상으로 들어와 나와 함께하는 자들에게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잃어버린 지난 것, 내가 흘려보냈던 시간으로부터의 도피이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 도피의 시작점과 쓸쓸하게 닿아있다. 그것들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나의 길고 긴 여행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 슬픈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또 다시 도망치고자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그 쓸쓸하고 괴로운 풍경이 가슴 한쪽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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