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도련님 이야기


 내가 속칭 '부잣집 아들'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후였다. 그 전까지 난 대부분의 친구들도 정원이 딸린 5층짜리 주택에서 지내고, 저녁식사마다 고기를 먹으며, 수업을 마친 뒤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외제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집은 무척이나 작았고, 내 방에 몇 대나 있는 게임기도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써왔는지 여기저기 스티커가 붙고 낙서가 새겨진 허름한 책상과 몇 권의 책들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인천 송림동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형주택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두 명의 작은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당시 할아버지는 인천에 큰 공장과 전문대학을 소유하고 있어서 굉장히 돈이 많았다. 그때 살던 집도 버려진 무덤가를 밀어 세운 학교 옆에, 오랜 시간동안 정성들여 지었다고 들었다. 주변에는 여느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종종 집으로 찾아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는 손자인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뭐든지 손에 넣도록 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내가 받은 선물을 나눠 주곤 했는데, 한번은 밖으로 나와 보니 한 아이가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코흘리개 동생 손을 꼭 잡고 있는, 지저분한 차림의 여자아이. 나는 그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아버지의 자동차 위로 올라가 함께 소꿉놀이를 했다. 한참을 재밌게 놀고 있자, 기사아저씨가 나를 찾아 왔고. 나는 지붕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썼다. 다음날 정원에 앉아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기사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다 앞으로는 차 위에서 놀면 못쓴다고 이야기를 했다. 참으로 차분하고 인자한 말투. 하지만 난 얼굴이 확 달아올라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우리 아빠 기사인 주제에’

 철없는 어린 아이가 참으로 잔인하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런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어루만지더니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순간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방에서 나가기가 싫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었다.
 그날 밤 처음 보는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향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는 함께 놀았던 여자애의 아버지였다. 다음 날 거리에서 다시 만난 여자애는 나에게 욕을 하며 내가 준 선물을 집어던졌다.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그 애를 나는 복잡한 기분으로 그냥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 후 곧바로 기사아저씨에게 달려가 엉엉하고 울며 사과를 했고, 아저씨는 괜찮다고 말하며 허허하고 웃었다.

 고모의 장례식 때 다시 만난 아저씨는, 어릴 적에 보던 것과는 다르게 나보다도 키가 훨씬 작은 사람이었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내 머리를 어루만지던 그의 손. 나는 아저씨의 그 손을 꼭 잡고 안부의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 잘 지내셨죠. 건강하세요? 그러자 암 투병중이라 고생이라며 그 때와 똑같이 허허하고 웃는 아저씨. 여전히 차분하고 인자한 그의 목소리가, 석양빛에 물든 채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던 어린 남매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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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4Sqd 2009/08/09 01:24 # 삭제 답글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면 남들 갖고 노는 장난감도 없었고, 만화책도 못보고, 집에서 정부미 사다가 먹었다는 사실도 뒤늦게야 알았고 뭐 그랬네요. 하도 불쌍해 보였는지 아버지께서 컴보이 하나 사주셔서 그렇게 기뻐했던 적은 있었네요.

    누릴 거 누리는 주변 애들이 부럽긴 했는데 전체적으로 청소년기를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하게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 어릴 때부터 체념하는 법을 알았다기 보단 별 생각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네요.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의 이견조차 들지 않았던 그 시절의 제가 과연 행복했는지는 말할 수가 없군요.
  • 디니마 2009/08/10 15:48 # 삭제 답글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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