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의 깨달음 이야기


호연님의 그림입니다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이쪽으로

http://iearthcitizen.org/ 




작은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더욱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셨으면 좋겠네요.




. 잡담


좋지 않은 일들은 한꺼번에 찾아온다.
답답한 심정, 마음 둘 곳이 없구나.



12월 그림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묻자 윤지는 잠시 동안 생각하더니 '새 아빠' 라고 대답했다. 예상 밖의 대답에 놀라 S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도 많이 황당했던지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입을 연 채 자신의 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그만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빛을 내는 가운데 조용한 침묵이 집 안을 감돌았다.

 그런 것이었나.
 하지만 윤지야. 그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주기에는 조금 버거울 거 같은데.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 (破, 2009) -내용수정- 리뷰







 에반게리온 파를 다시 보고 왔다. 처음에 봤을 때는 그저 놀라서 머릿속으로 정리하기가 힘들었는데, 다시 보고 나니 세세한 사실까지 눈에 들어왔다. (스포일러가 되니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안노 히데아키는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
 
 에반게리온은,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은 중2병이라고 치부되는 사이코드라마 형식의 연출. 선과 악의 구분이 어려운 메카닉과 사도. 나약하고 무기력한 주인공과 매력 넘치는 여성 캐릭터들. 종교적인 떡밥을 섞어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복잡하고 암울한 종말론적 스토리 등.

 이처럼 기존의 애니메이션과 다른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에바의 세계로 미친 듯이 빠져들게 만들었고, TV판의 내용들을 뒤집어버린 잔혹하고 충격적인 극장판의 성공까지. 그렇게 안노는 에반게리온을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신화로 만들어버렸다. *

 안노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만들고 나서 자신이 생각해둔 에반게리온을 모두 완결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완결'이라는 의미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단순히 '에반게리온'의 극장 상영이라는 사실에 몰두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에바에 열광했고, 에바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채였다.
 안노는 다시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PS2로 나온 '에반게리온 2'라는 게임에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에반게리온의 모든 떡밥들을 풀어 넣었다.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완결이 되길 바라면서..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에바의 후일담을 원했다.

 안노가 우리에게 감사해야한다고 이야기 한 것은 이러한 점에 있다. 상품들이 나올 때마다 사골게리온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돈을 쏟아 붓는,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영화를 보고 난 뒤 박수치며 환호하는 팬들이 있다는 건 전대미문의 일이니까.

 용산 전자랜드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도배가 되던 시절. 에반게리온의 내용도 모르면서 나는 당시에 나온 OST를 모두 구입했다. 물론 복제품이었지만 매일같이 음악을 들으면서 CD의 안에 동봉되어있던 자켓의 사진들을 봤다. 잡지에 에반게리온의 특집이 나오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에반게리온의 세계를 알고 싶었다. 국내에 비디오가 풀리기 전에, 일본에 있던 작은 삼촌에게 일본에 발매한 테이프를 복사해달라고까지 부탁할 정도였다.

 이처럼 나에게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몹시도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다. 그러한 애니메이션이 1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성숙해진 자아를 가진 캐릭터들로 돌아온 이번 작품들을 보며, 지난날의 추억에 매달려있던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길었다. 그리고 완벽한 종지부를 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물론 안노가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기존의 캐릭터들의 성격과 세계관을 모두 파괴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걸 보면 자신이 저질러놓은 행동들을 이번에야말로 '정리' 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번 시리즈에서는 부디 이카리 신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것.
 지난 10년 동안 나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구 극장판의 마지막 장면. 아스카와 둘만이 남은 세계에서 -차라리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게 그녀를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고독하고 비참한, 끔찍하기 짝이 없는 그러한 세계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나는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실제로 만화 EDEN의 저자 '엔도 히로키'는 에바를 보고난 뒤 '내가 하려던 걸 모두 안노가 해버렸다' 라고 이야기 했다. 에바가 끼친 영향은, 만화 업계는 물론 일반적인 사회에까지 퍼트려 에바 붐을 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 '에바' 이후로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실 안노 그 자신도 지난 10년간 에바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에바가 끝난 뒤,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이 이 세상에 나와 주길 바랬다. 자신이 만든 세계의 다음으로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의 '완결'이었다.
 하지만 에바가 완결난 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은 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에바를 사랑했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일을 저질러버린 그들(가이낙스)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때에도, 그들 스스로 에바를 뛰어넘는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길은, 지난 10년간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을 파괴시켜 새로운 이야기로 변형해 나가는 일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안노 그 자신도 스스로가 만든 '에바'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근황 잡담



 많은 일이 있었다. 직원의 실수로 아이폰 예약이 날아가고, 가까스로 다시 예약한 아이폰을 또 한 번의 직원의 실수로 못 받을 위기가 생겼다. 가까스로 물건을 받아 집에 돌아오니 모니터가 작살. 아이폰에 동봉되어있는 충전기는 초기불량.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상상만으로도 골이 아파온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요? 그만합시다. 어휴 나 너무 힘들어.



GQ 그리고 이런저런 잡담








 아이폰 예약하러 가면서 머리도 자를까 했는데, 프리스비에 전화해보니 전화로도 예약이 가능하단다. 일단 예약을 하고나니 굳이 서울까지 올라 갈 필요가 있겠냐 싶어서 그냥 동네나 한 바퀴 산책하기로 했다.
 떡볶이를 먹고 나오자 지나가는 커플이 사이좋게 신종플루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양이 어쩐지 새의 부리처럼 보였는데, 서로의 부리를 마주 대고 뽀뽀하는 장면을 상상했더니, 종교재판을 소재로 했던 잔인한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묘하게 기분이 안 좋았다. 뾰족하니까 맞추기도 어렵겠지만.

 오랜만에 GQ를 샀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다이어리가 부록이었는데 작년의 곰팡이 모양 커버와는 다르게 정상적인 디자인이었다. 다행이다. 이번에도 열심히 쓰는 시늉을 하다 대충 구석진 곳에 넣어두도록 하자.




서점 그림


 
 이건 불치병이다. 분명히 잠깐 들러보자는 마음으로 서점에 들어가는데,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오면 어느새 손에는 두 세권의 책들이 쥐어져있다. 또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이게 문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을까봐, 아예 사려고 했던 책 한권만 사고 재빠르게 나올 생각에 입구에서부터 뛰어 들어간 적이 있다. 책을 찾아 계산을 한 뒤 가방에 넣고 신속하게 밖으로 나오는 장면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그렸다.
 하지만 그런 시뮬레이션과는 달리, 나는 자주 가는 서점에서 또 다시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아 이쪽저쪽으로 돌며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컴퓨터로 위치를 검색해 찾아갔다.
 그런데 프린트를 들고 위치와 방향을 확인해가며 제대로 된 장소를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의 재고내용과는 달리 찾고자 하는 책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직원에게 이야기를 해서 책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직원은 책장을 슥 훑어 본 다음 컴퓨터를 두들기고는 창고에 있을 테니 책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문제는 내가 직원이 책을 찾아오는 동안 돌아다니며 다른 책을 살펴본다는 점에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는 대부분, 예전에 살까말까 고민하다 포기했던 책이 ‘나 여기 있어요‘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눈에 들어온 책을 보며 '이게 왜 여기 있어?' 라고 머릿속으로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는데, 마침 창고에서 돌아온 직원이 나의 뒤쪽에서 상큼한 미소와 함께 책을 들고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던 나는 그만 직원에게 얼떨떨한 얼굴로 감사를 표했고, 그 후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진이 빠진 표정으로 책 두 권 모두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울리던 끔찍한 비명소리는 어느새 피의 오케스트라 협주로 변하여 힘차고 웅장한 소리와 함께 다음 악장으로 달려가는 중 이었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이러다보니 마일리지는 점점 쌓여가지만 그에 비해 지갑은 점점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마일리지도 책 한권을 더 고르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는 또 다시 악순환의 반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에 하나 읽고 싶은 책이 하나 더 발견될 경우를 위한 해결책을 궁리해냈다. 그것은 일부러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서점에 간 뒤, 두 개의 책을 비교하여 소장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책을 그 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리는 것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한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나머지 한 권만 계산을 하고 돌아오면 돈도 아낄 수 있었고 마음도 행복했다. 마일리지도 계속해서 쌓여갔다.

 그렇게 얼마동안은 이 방법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마음에 들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또 다시 그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방법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질 경우를 떠올려보니, 나는 그 책을 서점에서 돈을 주고 사야할지, 아니면 전과 마찬가지로 한 번 더 서점에서 읽고 말지,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풍경 그림


 




 아이는 모래 위를 걷는 것이 버거운지 몸을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며 걷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아내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아이를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엄마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가던 아이는, 그녀의 품에 안기기 전에 그만 모래밭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고개를 들고나니 이마에 모래가 한 가득이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아이에게, 그녀는 말없이 두 손을 내민다. 울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자장가처럼 조용히 아이를 달래가며 그녀는 내 쪽으로 돌아 웃음을 터트린다.

 결혼을 할 생각은 없지만, 때로는 그런 미래가 있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보곤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우리들의 피가 이어진 아이. 그렇게 함께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가족의 풍경을.





유성우 잡담


 2001년. 유성우 내리던 밤을 기억한다. 그 날은 친구들과 함께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 밤을 새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묘한 흥분과 기대감이 점차 불평, 불만으로 바뀌기 시작했을 때쯤 누군가의 입에서 '떨어진다!'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늘을 찾았고, 그로부터 약 한시간정도 넋을 잃은 채 비처럼 쏟아지는 장대한 유성우를 지켜보았다.

 간밤에 유성우를 보려고 밤을 샜다. 2001년의 그날이 생각나 술을 마시고도 밀려오는 잠을 쫒으며 억지로 참았다. 언론에서는 전국 전 지역에서도 장대한 유성우를 볼 수 있다며 기대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밤을 새며 하늘을 올려다본 결과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은 별로 없더라. 장대한 우주쇼는 무슨.
 전체적으로 7개 정도의 크고 작은 빛을 보았다. 보온병에 녹차를 가지고 나가, 전화통화를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니. 아. 목이 뻐근하다.


쌍둥이 그림









 며칠 전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는데. 병원 같기도 하고, 학교 같기도 한 건물 안에서 누군가와 손을 잡고 달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숨이 차오를 정도로 빠르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아무도 없는 건물을 달렸다.
 5층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진이 빠져, 흰 복도에 벌렁하고 누워 거친 숨을 내쉬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눈치를 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벌떡 일어나 다시 길고 긴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건물의 중앙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향긋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서 달리기를 멈추고 킁킁하고 맡아보니 갓 구운 빵 냄새 같았다.
 '
빵을 굽나봐!' 하고 내가 이야기를 하자 그 아이는 달리기를 멈추고는 어떤 방으로 나를 불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건물과 같은 하얀색의 작은 방이 있었는데, 방의 한가운데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맛있어 보이는 빵이 따끈따끈 연기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빵을 가지고는 밖으로 나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내리쬐는 햇살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서, 우리는 그곳에서 사이좋게 반으로 빵을 나누어 입에 물고는 우물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래, 싱그럽고 건강해 보이는 녹색 잎들이 건물의 위까지 올라와있었다.
 맛있지? 그가 묻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빵을 입에 물고 옥상에서 보이는 풍경을 기분 좋게 감상했다.

 잠에서 일어나 커피 물을 올리고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식빵을 물었는데, 제대로 묶어 보관하지 않았는지 퍼석해서 맛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꿈속의 그 아이는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나의 쌍둥이 형제라는 설정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봐도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와 나. 둘 중 누가 형이었고 동생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옥상에 올라 나누어 먹은 따끈따끈한 빵은 정말 정말 맛있었다.





기타 그림












 요즘에는 밤이 되면 아마추어 일본인 연주가가 어쿠스틱 기타로 노래를 하고 잡담을 하는 라이브 방송을 듣는다. 처음에는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듣다 보니 어느새 밤만 되면 자리에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기다리게 됐다.

 어쿠스틱 기타를 배운지 이제 1년 정도라고 하는 그녀는 특별하게 연주를 잘 하거나 노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듣는 사람을 편안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다. 집 근처에 전철역이 가까이 있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연주를 하는 동안 종종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함께 들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려고 한다는데. 의외로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잔잔한 기타소리와 잘 어울려 푹신푹신하고 편안한 느낌을 만든다.
 
 내일은 일요일까지 기후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 잘 다녀오라고 메시지를 남기자 고맙다며 한 곡을 더 연주했다. 새벽쯤에 일본에 작은 지진이 일어났다고 들었는데, 여행에 차질이 없으면 좋겠다. 부디 즐겁고 재미있는 주말이 되길.





바다 그림





 봄베이진 30 , 블루 큐라소 15, 라임 15의 비율로 넣고 쉐이킹. bar다에서 맛볼 수 있는 오리지널 칵테일 '바다'의 레시피.

 라임이 없어서 레몬즙을 넣었다. 쉐이커가 없어서 비슷한 모양으로 컵을 끼우고 흔들었다.
흔들다보니 이게 재미가 있네. 에고래핑의 음악에 맞추어 이리저리 움직이며 흔들어대다 부엌에 흘리는 참사가. 그 와중에도 강아지들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먹고 봅시다 주인님하며 달려와 바닥을 핥으려고 하니, 걸레를 찾으랴 강아지들 막으랴 정신이 없다.

 완성이 되고 한 모금 마셔보니 이거 그런대로 괜찮은 걸. 실망한 강아지들을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와 홀짝였다. 대낮부터 칵테일이나 만들어 마시고 있으니 잘하는 짓이다 하는 생각이 들고.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색깔은 가게에서 먹었던 것보다 마음에 들게 나왔다. 맑고 투명한, 차가운 느낌이 드는 색. 사파이어에 구멍을 뚫고 차가운 물을 넣어서 색을 섞으면 이런 느낌이 나올까.

 '요리보고 세계보고'는 정말 악랄한 방송이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눈으로 TV를 트니 빰빰빠 빰빰빠 하는 음악과 함께 재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어느 산골 마을에까지 들어가서 송로버섯을 전문으로 하는 파스타 집을 취재하고 있었다.

 버섯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송로버섯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한 알에 50만원이나 한다는데. 피로에 지쳐 보이는 PD는 '흐음 향기가 정말 향기롭군요.' 라는 극히 평범한 감상을 이야기하더니 한 입 한 입 입으로 집어넣어 우적우적 씹었다. 와 저게 다 얼마짜리야. 졸린 눈으로 툴툴대며 방송으로 보고 있으니 배가 꼬르륵거렸다. 혹시나 하고 엄마- 하고 불러봤지만 역시나 집에는 아무도 없고.

 어제는 폭찹 삼겹살 구이를 만드는데 녹말가루가 없어 어쩔까 하다 대충 소스만 졸이고 부어버렸더니 결국 폭 소스 쓰나미에 난민이 되어 허우적거리는 고기구이가 나오고 말았다. 
 이게 뭐야 하며 비참한 결과물을 입으로 집어넣고 있으니, 내일은 간단하게 라면이나 끓여먹어야겠다고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는데 이렇게 요리전문방송을 보고 있으니 어제의 결심은 어디로 갔는지. 라면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 미디어의 힘이여.

 결국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무조건 양파를 썰고 있으니 갑자기 지난 번 TV에 나왔던 중화요리가 생각났다. 화력이 강한 불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힘차게 냄비를 흔들어대며 요리를 만드는 중국인 아저씨.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중화요리는 고작해야 볶음밥밖에 없지 않은가. 귀찮은 생각에 그냥 미역국이랑 밥을 먹을까 하다 난잡하게 잘라놓은 양파를 보고 그냥 볶음밥을 만들기로 했다.

 그때 취재팀은 자기가 독자적으로 만들었다며 콧대를 높이는 이탈리아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고 그리스 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풍부하고 신선한 해물재료들로 뭔가 느끼해 보이는 요리를 만들고 있는 TV를 뒤로 하고, 불을 켜 양파를 볶고 계란을 익히는데. 갑자기 요리사가 녹인 버터 소스를 뿌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와 버터를 저렇게도 만드는구나 하고 잠시 놀라서 TV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이걸 어째. 굴 소스를 적당히 넣어야 하는데, 좋아하지도 않는 해물요리에 살짝 눈을 줬다는 죄로 예상했던 양보다 훨씬 많은 굴 소스를 넣어버렸다. 아 이건 아닌데요. 어쩐담.

 당황한 나는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끄집어대다 화이트 와인을 발견했다. 이제 와서 솔직히 이야기하면. 중화볶음밥에 화이트와인을 왜 넣었는지 도무지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는 무슨 메시지를 받은 것 마냥 그것을 힘차게 넣었다.
 한참을 지지고 볶아 중화 풍 볶음밥을 완성시켰는데.. 맛있는 향기가 올라온다. 어? 이거 잘된 거 아냐? 하며 즐거운 얼굴로 한 숟갈을 입으로 집어넣어 맛을 보는데.. 아..

 
'요리보고 세계보고'는 정말 악랄한 방송이다. PD가 밥을 먹을 때는 당당하게 PD라고 쓰고 다른 한국 사람이 먹는 것을 촬영할 때는 손님이라고 소개한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그 손님의 옆에 코디네이터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는데. 거짓말이나 하는 방송. 만날 자기들끼리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여러분 좋은 향기가 나는군요' 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결론. 바다는 bar다에서 마시는 게 더 맛있다.

 



こんにちはまたあした 잡담







독서 잡담



 일주일동안 스무 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원서로도 세 권정도 있는데, 하나를 읽고는 나머지 두 권은 방치중이다. 외출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계속해서 읽었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소리에 신경이 쓰여, 작게 음악을 틀어놓거나 전화기를 꺼두거나 했는데. 그런 일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더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하는 일은 옆에서 졸고 있는 강아지를 방에서 내보낸 뒤, 졸린 눈으로 간밤에 읽던 페이지를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섯 번 중에 두 번은 다시 책을 잡고 잠들어버려서, 눈을 뜨면 일단 무조건 창문부터 활짝 열고 찬 공기를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그리고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타는데.. 문제는 내가 인스턴트 커피의 물 비중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모른다는 점에 있었다. 진할 거 같아서 물을 좀 많이 넣으면 밍밍하고.. 연할 거 같아서 원두를 좀 많이 넣으면 진하고.. 이정도가 딱이라고 생각해 적당한 양을 넣으면 묽거나 진하고..

 매번 이런 식이다보니 나는 한 번도 내가 탄 인스턴트 커피를 맛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여러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 동생 아는 형 아는 누나 친구 동생 화장품회사 대출업체 sk텔레콤 등등.
 귀찮아진 나는 다음에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바로 통화종료를 눌러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손에 핸드폰을 손에 쥐고 책을 보면서 '언제든지 걸어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고 있으면 나를 귀찮게 하던 전화가 딱하고 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안 오려나? 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면 문자가 오거나 전화가 오거나..

 그래도 대부분의 전화는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들이었기에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고마웠다. 연락을 잘 하지 않는 나를 여전히 생각해주고 있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감동스럽기도 했다. 
물론 그 중의 몇 명은 전화를 걸어 이쪽의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자신의 고민을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하거나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히히히 거리며 혼자서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S와 P. 부디 반성하기를.)
 하지만 가장 최악이었던 건, 수화기 너머에서 눈물 콧물을 다 짜내며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니 본인이 잘못한 게 맞는데 뭘 그리 억울하다고 그러는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대충 관심 있는 척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책 밑에 찍힌 도장을 아세톤으로 몇 번이고 지우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이런 위선적인 행동들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으로 오해되기 때문에 이러한 전화가 계속해서 걸려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15분정도 더 이야기를 하고는 무척이나 후련하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한껏 가벼워진 목소리로 다음에 나에게 밥을 사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잠시 감탄했다. 이렇게 방안에 앉아 책만 보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사람들과 연결이 되는구나.. 신기했다. 물론 내가 전화기의 전원을 꺼놓으면 그럴 일도 없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나는 다시 누군가와 이별을 하거나, 맨하튼의 골목에서 살인범을 쫒거나, 우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사랑하는 그녀를 저주하며 바위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하거나하며 책을 읽어갔다.

 어제는 한참동안 소설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책상 아래쪽에 깔린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책이 뭔가에 눌려있는 것 같아, 아무래도 신경에 쓰여 손으로 꺼내 먼지를 털었다. 
설국이었다. 어라? K에게 빌려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게 왜 여기에 있지? 하며 페이지를 넘기자,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하고 익숙한 문장이 나왔다. 하지만 창밖을 내다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번개도 엄청나게 쳤다. 아파트 아래쪽으로 우산이 뒤집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뭔가 굉장히 대단했다.
 
 이 감동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하고 멍하니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번쩍번쩍 빛나는 번개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귤 생각이 나서 부엌으로 가 김치냉장고에서 귤 봉투를 꺼냈다. 봉투째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고, 번쩍이는 번개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망했다 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시계를 쳐다보았지만, 시계는 완벽하게 오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잠들면 또 밤에 잠이 안 올 텐데..' 하고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읽을 책이 다섯 권이나 더 남아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은 어두웠고 번개는 히스테릭하게 번쩍였기 때문에. 어쨌거나 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귤과 책의 산더미에서 강아지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방에서 은은하게 귤 냄새가 났다. 창문을 열면 비 냄새와 섞일까.. 나는 오후에도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다. 








스피커 잡담





 아는 형이 홍대 프리스비에서 아이팟 터치 32G를 샀더니 사은품으로 주더라. 형이 자기는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내가 받아왔는데, 이게 의외로 좋은 소리를 낸다. 애플 이어폰을 크게 확대시킨 모양. 동글동글하니 귀엽다. 네모난 부분은 전원이 연결되는 곳인데, 아이팟 클래식처럼 액정부분과 클릭휠의 모양이 새겨져있다. 스피커가 고장나서 곤란했는데 요긴하게 쓸 수 있을 듯. 배게 양쪽에다 한 개씩 두고 들으면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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