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아는 형이 홍대 프리스비에서 아이팟 터치 32G를 샀더니 사은품으로 주더라. 형이 자기는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내가 받아왔는데, 이게 의외로 좋은 소리를 낸다. 애플 이어폰을 크게 확대시킨 모양. 동글동글하니 귀엽다. 네모난 부분은 전원이 연결되는 곳인데, 아이팟 클래식처럼 액정부분과 클릭휠의 모양이 새겨져있다. 스피커가 고장나서 곤란했는데 요긴하게 쓸 수 있을 듯. 배게 양쪽에다 한 개씩 두고 들으면서 자야겠다.




이어지는 내용

by 수- | 2009/10/18 02:23 | 트랙백 | 덧글(0)

starry night

 
 



by 수- | 2009/10/13 04:17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도피



 숲의 공기는 시리고도 맑았다. 하늘은 높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모두가 잠든 밤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들면 어느 곳에나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러한 별들을 하나 둘 헤아리고 있으면 머리를 휘젓고 있는 많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내가 제쳐두었던 또 다른 일들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간간히 저 멀리서 새벽 예불의 목탁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고, 산 아래쪽 등불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고요하던 숲은 아스라이 소리를 냈고, 그렇게 풀밭에 누워 뭔가를 생각했다가 안했다가 하는 동안 어둠은 밀려가고 저 멀리에서부터 여명이 찾아왔다. 구름은 떠오르는 아침 해로 물들며 하늘을 수놓았고, 밤 동안 들이켰던 찬 공기를 내쉬며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아침과 만났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보는가.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본다. 그리고 별을 보지 아니한다. 과거를. 현재를. 그리고 미래. 앞으로 다가올 끔찍하리만큼 길고 긴 나의 시간을. 그것은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어느새 나의 곁으로 다가와 숨을 죽이며 허리를 감싸고 있다. 달콤하기도 하고 소름이 돋는 그 손길에 취해 나는 많은 것들을 버려왔다. 그리고 얻었다. 그렇지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누군가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과는 달리 나는 언제나 나의 주변으로부터 도망을 친다. 나의 일상으로 들어와 나와 함께하는 자들에게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잃어버린 지난 것, 내가 흘려보냈던 시간으로부터의 도피이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 도피의 시작점과 쓸쓸하게 닿아있다. 그것들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나의 길고 긴 여행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 슬픈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또 다시 도망치고자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그 쓸쓸하고 괴로운 풍경이 가슴 한쪽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by 수- | 2009/10/13 04:15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퇴사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느꼈던 흥분과 설레임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가라앉아갔다. 막상 내일부터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그래도 마음은 편하구나. 2년 9개월. 사회의 톱니바퀴 역할을 어눌하게 연기했던 내 모습들. 떠올리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이 자격증도 제대로 있는 경험자여서 인수인계도 쉽게 끝이 났다. 이 사람은 나와는 달리 흉내가 아닌, 제대로 된 목표와 신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 섭섭한 마음은 없다. 잔잔하고 편안하다. 퇴근길에 납치당해서 술을 먹은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기쁜 마음으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마시자. 마시고 푹 자자.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꿈을 꾸자.


by 수- | 2009/09/30 22:47 | 잡담 | 트랙백 | 덧글(5)












 '마치 파도와도 같이, 다가오고 밀려나가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잠잠해지는 것은 순간. 멈춰있는 당신을 비웃듯, 감정은 다시 어지러운 바람을 몰고 찾아온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 것. 삶을 괴롭게 하는 모든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후회하는 자신을 후회하지 말 것.'

 그녀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것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가도, 이따금 심장에 가장 가까운 곳까지 올라와 나 자신을 마주보게 만든다. 정말로 우스운 일은.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이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과, 그러한 사실에 내 자신이 놀라울 정도로 안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처음. 모든 것의 시작. 이제는 혼자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녀가 남기고 간 수많은 것들은, 언제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일 수도 있고, 나를 나아가게 할 원동력일 수도 있다.

 조용하게 파도가 치던 그날 밤. 어색한 웃음과 함께 깍지를 끼고. 나보다 몇 걸음 앞 쪽에서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그때의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여전히 우리가 이어져있다고 믿고 싶다. 나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처럼, 나에 대한 그녀의 기억도,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고. 그녀가 나아갈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by 수- | 2009/09/10 05:03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눈물의 무게


  내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진실은 상호간의 믿음을 돈독하게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믿음을 한순간에 깨버리는 서글픈 결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참기 힘든 진실과 대면했을 때에도 믿음이라는 힘은 우리의 인연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일이 재차 반복된다면. 당신이라는 인간에게 실망하는 일이 계속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는 당신이라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나라는 인간이 완벽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 같은 인간도 무엇이 중요한지는 알고 있다. 스스로를 탓하며 후회하는 모습은, 외로움에 사로잡혀 내뱉는 한숨은, 술자리에서 털어놓는 가슴 아픈 고백은, 소리죽여 흐느끼다 지쳐 잠드는 순간은, 그러한 것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기 스스로에게 한없이 솔직하고 고결한 것이어야 한다.
 눈물의 힘은 강력하고도, 또한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눈물은 진실 되어야만 한다. 나는 당신의 눈물에 응했다. 당신의 한숨에 귀 기울였다. 당신의 손을 잡고 함께 이겨내 주고 싶었다.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 쓰라렸던 기억들을 술 한 잔과 함께 웃으며 주고받는 시간이 오길 함께 기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행동들이 참으로 버겁다. 그리고 겁이 난다. 

 나에게 했던 그 때의 말을, 더이상 진심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덧없고 애틋한 문장으로 자신을 꾸미려고 하지 마라. 지난 잘못을 겉으로만 후회하며, 또 다른 부정을 포장하려는 교묘한 허세는 당신을 좋아했던 자들을 향한 기만이며, 한없이 비겁하고 잔혹한 행동이다.
 내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당신은 잊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당신이 내 앞에서 흘린 눈물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떠올려야만 했다.



by 수- | 2009/08/30 03:57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독 단평

 몇 가지 요소가 아쉽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던 영화. 영화 <독>은 구차하게 몸을 꺾고 기괴한 소리를 내는 원혼의 모습이 아닌 인물간의 심리 묘사와 약간의 오컬트적인 요소들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서서히 죄어오는 공포를 선사한다. 녹슨 물. 배수구에 낀 머리카락. 신의 이름을 부르며 미소 짓는 이웃집 사람들. 이러한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 그들 스스로의 삶에서도 찾아 볼 수 있을 평범한 일상적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어두컴컴한 공간적 구도가 뒤섞이며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무겁고도 묘한 긴장감을 안긴다. 형국(임형국)과 그의 부인 영애(양은용)는 자신들이 저지른 어떠한 행위로부터 벗어나고자 고향집을 정리하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들은 ‘신’에게 기도하며 찬양하는 행위로 자신들의 과거를 보이지 않게 덮어두고자 한다. 마치 장독대 속 내용물이 보이지 않도록 두꺼운 뚜껑을 닫아버리듯이. 하지만 흐름을 멈추고 고인 물은 썩게 되기 마련. 어두컴컴한 독 속에 갇힌 그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영화의 제목인 <독>은 Poison을 뜻하는 ‘독’이 아닌 Pot. 즉 무엇인가를 담아두는 ‘독’의 용도로 지어졌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Poison의 의미로도 동시에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인인 감독은, 영화에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보다 정직하고 솔직한 시각에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종교와 초현실적인 문제라는 두 가지 소재를. 굳이 섞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화로워 보이는 그들의 일상이 무너져가며 파국으로 치닫는, 암울하고도 극단적인 이러한 심리적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다. 그나저나 포스터 속 여자아이의 섬뜩한 눈빛은 정말 징글맞게 잘 나온 듯. 겁이 많은 친구에게 선물로 줘야겠다.




이어지는 내용

by 수- | 2009/08/28 15:31 | 리뷰 | 트랙백 | 덧글(1)

해운대 비평


 대한민국 영화계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웃음을 짓는다. 언론에서는 천만관객 돌파의 시대라며 한국 영화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은 서로가 입에 침을 튀겨가며 열띤 토론으로 밤을 새워갔다. 잡지는 미친 듯이 팔려나가고 모두가 영화에 빠져있는, 바야흐로 영화계의 황금기. 행복한 비명이 절로 나오는 그런 꿈을, 그들은 여전히 꾸고 있다.

 해운대는 그런 달콤한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지독하다 싶은 정도로 평범한 가족주의 영화다. 물론 대기업의 투자를 전폭적으로 받은 이상, 새로운 시도로 도박을 하기 보다는 안전하고도 쉽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감성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여느 상업영화나 마찬가지인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해운대는 그 정도가 심하다. 구차할 정도로 관객들의 마음을 공격하고 공격해서 눈물을 쥐어짜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영화는 크게 ‘쓰나미’라는 재난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모습으로 나누어진다. 대부분의 재난영화에서 그러하듯,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일상은 평온한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소개,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한다. 초반부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만식과 연희. 휘와 유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모습을 과거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여줌으로서, 관객들에게 각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갈등을 알려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찾고자 했던 신선함보다는, 영화의 진행이 진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이것에 있다. 새로운 한국형 재난 영화라는 말을 듣고 극장을 찾았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가 중반으로 들어서며 문제점은 더욱 드러난다. 비극을 보다 격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깔아놓은 다수의 복선들이 바로 그것이다. 인물들은 영화 전반부에서 보여줬던 갈등을 폭발시키며 다양한 마찰을 겪는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기 전 그러한 마찰을 해소시키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고자 한다. 하지만 너무나 뻔한 소재들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결국 이 사람은 엄마를 부르짖으며 후회할 것이고, 저 사람은 딸을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장면들을 보고 찡한 무언가를 느끼며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한국형 블록버스터’에게 감탄하게 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쓰나미가 닥쳐오는 순간 영화는 말 그대로 재난 그 자체가 된다. 영화는 인물들이 죽기 전 구구절절 사연을 쏟아낸 뒤 죽음을 맞게 한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누군가의 도움으로 우연치 않게 목숨을 건진다. 이제 살아남는가 싶더니 다시 한 번 가족을 껴안고 엉엉 눈물을 쏟으며 죽는다. 한 번에 죽지 않는다. 그래.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이것이 한 인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다른 곳에서 사건을 맞이하는 또 다른 인물들도 바로 이런 식의 반복되는 구조로 죽음을 맞이한다. 나 죽어요 하고 신파극을 찍어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더니, 겨우 목숨을 건지고 나서 다시 한 번 슬픔을 부각시키고 죽는다. 같은 장면의 반복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여러 명의 감독들이 각각 비슷한 영화를 찍은 뒤 하나의 큰 영화로 합쳐놓은 듯한 기분이 든다. 영화가 장난이다. 이게 뭐야. 나오려던 눈물도 도로 들어가게 생겼다. 

 ‘우리도 한국형 재난영화를 찍을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광고를 해댄 해운대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배치한 신파극을 거대한 쓰나미로 덮어버리며 흥행돌풍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오는 여학생을 보며 이것이 감독이 원한 방식이라면 상업영화로서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굳이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조폭코미디랑 비슷하게 만든 뒤 쓰나미를 오게 하면 되는 거잖아. 요점은 부산 해운대에 쓰나미가 덮쳐오는 것이니까.

 관객이 곧 천만을 돌파한단다. 한국영화가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나보다.




by 수- | 2009/08/21 14:19 | 리뷰 | 트랙백 | 덧글(0)

철없는 도련님


 내가 속칭 '부잣집 아들'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후였다. 그 전까지 난 대부분의 친구들도 정원이 딸린 5층짜리 주택에서 지내고, 저녁식사마다 고기를 먹으며, 수업을 마친 뒤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외제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집은 무척이나 작았고, 내 방에 몇 대나 있는 게임기도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써왔는지 여기저기 스티커가 붙고 낙서가 새겨진 허름한 책상과 몇 권의 책들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인천 송림동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형주택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두 명의 작은 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당시 할아버지는 인천에 큰 공장과 전문대학을 소유하고 있어서 굉장히 돈이 많았다. 그때 살던 집도 버려진 무덤가를 밀어 세운 학교 옆에, 오랜 시간동안 정성들여 지었다고 들었다. 주변에는 여느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종종 집으로 찾아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는 손자인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뭐든지 손에 넣도록 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내가 받은 선물을 나눠 주곤 했는데, 한번은 밖으로 나와 보니 한 아이가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코흘리개 동생 손을 꼭 잡고 있는, 지저분한 차림의 여자아이. 나는 그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아버지의 자동차 위로 올라가 함께 소꿉놀이를 했다. 한참을 재밌게 놀고 있자, 기사아저씨가 나를 찾아 왔고. 나는 지붕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썼다. 다음날 정원에 앉아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기사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다 앞으로는 차 위에서 놀면 못쓴다고 이야기를 했다. 참으로 차분하고 인자한 말투. 하지만 난 얼굴이 확 달아올라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우리 아빠 기사인 주제에’

 철없는 어린 아이가 참으로 잔인하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런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어루만지더니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순간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방에서 나가기가 싫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었다.
 그날 밤 처음 보는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향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는 함께 놀았던 여자애의 아버지였다. 다음 날 거리에서 다시 만난 여자애는 나에게 욕을 하며 내가 준 선물을 집어던졌다.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그 애를 나는 복잡한 기분으로 그냥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 후 곧바로 기사아저씨에게 달려가 엉엉하고 울며 사과를 했고, 아저씨는 괜찮다고 말하며 허허하고 웃었다.

 고모의 장례식 때 다시 만난 아저씨는, 어릴 적에 보던 것과는 다르게 나보다도 키가 훨씬 작은 사람이었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내 머리를 어루만지던 그의 손. 나는 아저씨의 그 손을 꼭 잡고 안부의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 잘 지내셨죠. 건강하세요? 그러자 암 투병중이라 고생이라며 그 때와 똑같이 허허하고 웃는 아저씨. 여전히 차분하고 인자한 그의 목소리가, 석양빛에 물든 채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던 어린 남매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by 수- | 2009/08/07 02:47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바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지만, 여전히 나의 일상은 우울함과 나약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별을 바라보며 바람의 향기를 쫒고 홀로 떠있는 달을 벗삼아 마음을 달랜다.

 하루키는 지금은 없는 공주, 그리고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기 위하여 글을 썼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는가. 몇 번이고 밤을 지새우며 혼자서만 간직하고자 했던 약속을 저버리면서도, 이렇게 진실과 거짓을 섞은,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대체 누구를 위해서 쓰고자 하는가. 결국 아무 것도 쓰지 못했다. 비는 어느새 그쳐 후덥지근한 공기로 돌아와 있었다. 거리를 걷는 마음이 무겁다.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더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저 해변을 걷고 싶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늘에 동동 떠 있는 달과 함께 이국의 모래사장을 걸어보고 싶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다. 추억 떠올리며 콧노래를 하고, 거리의 전등이 꺼지는 순간에 맞춰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그고 싶다. 흐르듯 한없이- 한없이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나는 현실을 저버릴 수 없다. 한숨을 내쉬면서도 또다시 나의 그림자와 발을 맞대고 걸어가야만 한다. 여름의 공기가 온 몸을 감싼다. 발걸음을 돌려 bar다에 들어가자, 그곳에는 다른 가게에서 알게 된 바텐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우연이 어딨냐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밝게 미소짓고 있는 그녀에게 산미구엘을 받아 한 모금을 마셨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멍하게 앉아있는데 손님 중 한 사람이 피아노로 다가갔다. 점점 가게의 음악소리가 줄어든다 싶더니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다. 모두가 말소리를 줄이고 피아노 쪽으로 몸을 돌린다. 나도 눈을 감고 때때로 실수하는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한다. 이국의 파도소리 만큼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어째서인지 내일은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눈을 뜨자 땅콩을 건내며 바텐더 누나가 웃고 있었다. 민망한 기분이 들어 땅콩을 받아 내려놓고는 다시 맥주를 마셨다. 바다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좋은 밤이다.







by 수- | 2009/07/14 04:24 | 잡담 | 트랙백 | 덧글(4)

만년필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나는 동생에게 줄 마음으로 산 아이팟 터치를 들고 계단에 쭈그려 앉아 두번째 담배를 피고 있었다. 거리는 여름이었고 몹시도 붐볐다. 사람들의 모습이 녹아내리는 버터같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폰에서는 마빈 게이의 Sexual Healing이 나오고 있었고, 나는 흥얼흥얼거리며 억지로 기억나지 않는 가사를 따라부르며 걷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톡하고 건드렸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나는 너무 놀라서 그만 꽥하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아니 여기서 뭘 하고 있어요' '몇달간 좀 쉬기로 해서' '언제 돌아왔어요?' '지난 주? 집에도 연락 안하고 왔어 엄마가 얼마나 놀래던지' '그럴만도 하죠 세상에 연락 좀 하고 살아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랬다 걱정만하고 살면 아깝지않냐' '뭐가 아까워요' '인생? 크크' '아줌마 같은 소리를 하네' '죽을래 아 인사해 이쪽은 나랑 두번째로 친한 친구 J'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똑바로 인사 안할래?'

 방긋방긋 웃는 그녀와는 달리 내 심장은 심하게 쿵쾅거렸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나는 그녀의 친구에게 고작 고개만 끄덕거리는 정도의 인사밖에 할 수 없었다.

'근데 여기서 뭐해? 이제 집에 가?' '아뇨 그냥 좀' '밥은 먹었어?' '아뇨 아직' 시간이 몇시인데 밥을 안먹어 하긴 우리도 안먹었지만' '집에가서 먹을까 했지요' '오랜만인데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아뇨 나는 괜찮은데..' '아 저는 괜찮아요' '아뇨 정말' '괜찮다잖아' '정말 괜찮아요' '으하하하 미안해서' '괜찮다니까 야 그나저나 진짜 반갑다 잘 지냈어?'

 그래요. 반가워요. 나도 정말 반가워요. 그래서 우리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한껏 웃고 이야기를 하며 거리를 걸었다. 여전히 밝고 활기넘치는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시끄럽다고 생각하든 말든, 큰 소리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렇게 몇 시간동안 넘치듯이 이야기를 하고나서도 하고싶은 말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았다는 걸 느꼈지만,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만 후일을 기약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빌어먹을 출근. 

 그녀는 재회의 기념이라며 뭔가를 주고 싶다고 했다. 사양을 해도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아무거나 대충 골라달라고 말을 했고,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만년필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검은색과 황금색으로 이루어진 PARKER 제의 만년필.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펜촉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손바닥을 쿡쿡 눌렀더니 그녀는 고장내지 말라며 다시 한번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스카 피터슨의 'My Heart Stood Still'을 들으며 폴짝거렸다. 기쁘다. 행복하다. 방금 있었던 일이 마치 꿈만 같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와 잉크를 넣은 만년필로 그녀의 이름을 열다섯 번이나 쓰고 난 뒤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 다시 한번 기뻐했다.

 만약 그녀가 내년에도, 혹은 그 다음 언제라도 이곳을 다시 찾아준다면, 그 해 그녀의 생일에는 그녀가 종종 이야기하던대로 화사한 꽃다발을 선물해야겠다. 재회의 기념으로. 고운 리본을 단 향긋하고 생기넘치는 꽃들을 가득 담아서.



by 수- | 2009/07/05 04:43 | 트랙백 | 덧글(5)

기억하라

 무엇이 그리도 힘이 들더냐. 깊은 밤 곤히 잠들지도 못한 채 한숨을 내쉬는 어린 청춘아. 작별을 고한다는 일이 그리도 가슴이 찢어질 듯 괴롭더냐.

 그렇다면 흙내음 가득한 풀밭에 앉아 가을이 오는 소리를, 봄의 시작되는 이곳에서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떠하냐. 먼발치에서부터 걸어오는 누군가의 발 소리를, 눈을 감고 그려보는 건 어떠하냐. 쏟아질 듯한 별들의 모습을, 네 가느다랗고 연약한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이어보는 건 어떠하냐.

 지우는 일은 쉽지 않은 법. 그래도 달랠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 한가득이거늘. 울먹이는 너의 눈동자로 바라봐주길 바라며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거늘.

 외로움에 취해, 술에 취해, 밤바람에 취해, 어둠을 걸어라. 춤을 추어라. 휘청거리며 등불을 밝혀라. 가슴이 벅차오르면 눈물을 흘려라. 연민에 사로잡히면 노래를 불러라. 달은 그렇게 너의 모습을 비출 것이고. 별은 그렇게 너의 침소가 되어줄 것이다.

 반복될 것.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 될 것. 작별과 재회를 계속해가며, 일렁이며 뜨는 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렇지만 헤어짐이 있어도, 모두가 같은 곳을 딛고 살아간다는 걸.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너와 누군가는 같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간다는 걸. 추억을 떠올리는 일은, 눈물만이 함께가 아니라는 걸.



by 수- | 2009/07/02 11:06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8)

축하

 오전에 은행에 들렀는데 매번 만나는 은행 여직원이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있더라.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물어보니, 3년동안 만나 온 애인이 드디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마음씨 곱(다고 추정되고), 배려심도 깊(다고 추정되는), 웃는 얼굴이 예쁜 성실한 은행 여직원. 최고의 신부감이잖아? 부러운 놈. 나쁜놈. 세상은 불공평해. 신이시여. 저에게도 기회를. 
 이러쿵 저러쿵 중얼중얼거리며 지갑을 넣고 돌아서는데. 은행 문이 위잉하고 열리며 근사한 몸매를 하신 여성분이 들어오더라. 아니.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모델이십니까. 어어어어 하면서 자동으로 그쪽으로 목이 돌아가는데, 은행에 있던 대다수 다른 남자들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목이 움직이고 마는데. 이봐요들. 어딜 그리도 뚫어져라 보십니까. 그렇게 보셔도 뚫릴 옷 같지도 않은데. 어서 볼일들 보시고 빨리 회사로 돌아가셔야죠. 여러분들의 상사의 목소리가 저에게까지 들리는 거 같습니다.
 늑대같은 남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눈길 한번 안 주시며 또각또각 은행창구로 걸어가시는 도도한 아가씨. 캬.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는데, 어라? 방금 전까지 행복에 겨워 웃음짓던 은행 여직원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더라. 도도한 아가씨의 걸음걸이가 내 머리 속의 지우개였나.
 어찌됐든 축하드립니다. 늘 행복하세요.


by 수- | 2009/06/29 14:57 | 잡담 | 트랙백 | 덧글(1)

2009년 6월 26일

마이클이 죽었다. 어릴적부터 그의 노래가 좋았다.
팬이었는데. 정말 좋아했는데.

슬프다. 할 말이 없다.

by 수- | 2009/06/26 10:20 | 트랙백 | 덧글(4)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