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불치병이다. 분명히 잠깐 들러보자는 마음으로 서점에 들어가는데,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오면 어느새 손에는 두 세권의 책들이 쥐어져있다. 또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이게 문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을까봐, 아예 사려고 했던 책 한권만 사고 재빠르게 나올 생각에 입구에서부터 뛰어 들어간 적이 있다. 책을 찾아 계산을 한 뒤 가방에 넣고 신속하게 밖으로 나오는 장면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그렸다.
하지만 그런 시뮬레이션과는 달리, 나는 자주 가는 서점에서 또 다시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아 이쪽저쪽으로 돌며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컴퓨터로 위치를 검색해 찾아갔다.
그런데 프린트를 들고 위치와 방향을 확인해가며 제대로 된 장소를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의 재고내용과는 달리 찾고자 하는 책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직원에게 이야기를 해서 책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직원은 책장을 슥 훑어 본 다음 컴퓨터를 두들기고는 창고에 있을 테니 책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문제는 내가 직원이 책을 찾아오는 동안 돌아다니며 다른 책을 살펴본다는 점에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는 대부분, 예전에 살까말까 고민하다 포기했던 책이 ‘나 여기 있어요‘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눈에 들어온 책을 보며 '이게 왜 여기 있어?' 라고 머릿속으로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는데, 마침 창고에서 돌아온 직원이 나의 뒤쪽에서 상큼한 미소와 함께 책을 들고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던 나는 그만 직원에게 얼떨떨한 얼굴로 감사를 표했고, 그 후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진이 빠진 표정으로 책 두 권 모두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울리던 끔찍한 비명소리는 어느새 피의 오케스트라 협주로 변하여 힘차고 웅장한 소리와 함께 다음 악장으로 달려가는 중 이었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이러다보니 마일리지는 점점 쌓여가지만 그에 비해 지갑은 점점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마일리지도 책 한권을 더 고르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는 또 다시 악순환의 반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에 하나 읽고 싶은 책이 하나 더 발견될 경우를 위한 해결책을 궁리해냈다. 그것은 일부러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서점에 간 뒤, 두 개의 책을 비교하여 소장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책을 그 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리는 것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한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나머지 한 권만 계산을 하고 돌아오면 돈도 아낄 수 있었고 마음도 행복했다. 마일리지도 계속해서 쌓여갔다.
그렇게 얼마동안은 이 방법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마음에 들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또 다시 그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방법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질 경우를 떠올려보니, 나는 그 책을 서점에서 돈을 주고 사야할지, 아니면 전과 마찬가지로 한 번 더 서점에서 읽고 말지,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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